728x90

김훈 선생은 자신의 책을 두고 세상의 모멸과 치욕을 살아있는 몸으로 감당해 내면서 이 알수 없는 무의미와 끝까지 싸우는 한 사내의 운명에 관하여 말하고 싶었다. 

희망을 말하지 않고, 희망을 세우지 않고, 가짜 희망에 기대지 않고, 희망없는 세계를 희망없이 돌파하는 그 사내의 슬픔과 고난 속에서 경험되지 않은 새로운 희망의 싹 돋아나기를 나는 바랐다. 

우리는 만났으나 결국 세상을 떠난 모든 중증 외상 환자들의 명복을 빈다. 

삶은 평범함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나는 수술이 좋았고 수술방에 감도는 서늘한 감촉을 사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각종 인공생명유지장치들을 총동원해 환자에게 쏟아붓는 것뿐이고, 그 것은 치료를 돕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한 선임은 "해군은 제한된 상화에서도 낡은 장비와 부족한 보급을 탓하지 않는다"라고 했고,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든 함을 띄워야 한다" 라고도 했으며, 그것이 "이순신 제독때부터 내려오는 해군의 전통" 이라고 했다. 

단순하고도 순결한 세상, 나는 그것이 좋았다. 

육상 근무로 나오게된 이유는 현장의 문젣와 개선점을 사령부에 잘 인식시키기 위해서였어. 고속전단 운영과 기관계통의 개선점을 찾는 것, 그게 목적이었거든. 사령부에서 그를 육상으로 전출시킨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가 최일선에서 겪은 것을 토대로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하고자 했다.

나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외상외과를 선택했다. 

심편원은 내 심사위원 중 외상외과를 전공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내가 세계적으로 쓰이는 외상외과 교과서의 표준 진료 지침대로 치료했다는 내용의 자료를 수백번 제출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환자마다 쌓여가는 삭감 규모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렀다. 결국 교수별로 진료 실적에 기반을 둔 ABC원가 분석이 더해져, 나는 연간 8억원이 넘는 적자의 원흉이 됐다. 

나는 내 손끝에서 사람의 생사가 갈린다는 사실을 느낄 떄마다 그 무게감에 짓눌렸다. 

부서진 몸에 제 피보다 모르는 사람의 피를 더 많이 받아 명줄을 유지했다. 

선한 의지와 함께 기증된 선한 이들의 좋은 피가 수혈받은 사람에게 정서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결국 환자를 잘 치료할 수 있는 가의 여부는 개별 의사들이 평소에 얼마나 꾸준히 수련하는 가에 달려 있다. 

허 위원은 무성의 하고 냉소적인 나의 태도에 주목했다. 훗날 말하길, 그것이 이 분야야말로 최악이라고 판단한 이유라고 했다. 

연구진은 551명 가운데 176명은 살릴 수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179명 가운데 살릴 수 있는 확률이 75%가 넘었떤 환자는 21명이었고 25~75%였던 환자는 158명이었다. 두 집단을 합한 예방 가능한 사망률은 32.6%였다. 

중앙 응급으료센터장 윤한덕으로 빠르게 돌아와 있었다. 남광주역까지 가는 동안 중증외상센터 사업의 향후 계획에 대해 걱정 을 쏟아내는 그의 눈빛이 형형했다.  '대한민국 응급의료 체계'에 대한 생각 이외에는 어떤 다른 것도 머릿 속에 넣고 있지 않은 것같았다. 방금 전 빈 강의실에서 마주친 청년 의학도의 미소는 사라지고 없었다. by Dr.Engineer: 윤한덕님. 고인의 명복을빕니다. 

적절한 치료를 제공받는 템포, 헬리콥터를 이용해 곧장 외상센터로 이송하는 템포, 병원 도착과 동시에 수술적 치료가 이뤄지는 템포,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는 템포, 일반 병실로 옮겨 재활하다 퇴원하기 까지의 템포, 각 단계가 유기적으로 지체없이 이루어지며 최대한 빠른 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될 떄 환자의 목숨은 건저진다. 눈앞의 여자 역시 수술방에 이르기까지의 템포가 지켜진 덕분에 숨이 꺼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하루도 저의 부족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뜻이 환자들에게 잘 전달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주시고, 제가 하는 일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일개 한국인 외과 의사의 서명만으로 비행기를 내줄 리 없는데, 그것은 인요한 덕이었다. 

2003년 말부터 시작된 끊임없는 사직 압력 속에서도 '잘리는 순간까지는 최고의 수술적 치료를 제공한다.' 는 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내건 직업적 원칙이었다. 

'네가 자선을 베풀때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 - 마태복음 6장 3~4절

심각한 문제는 암덩어리 처럼 단번에 조직을 죽이지 않는다. 그것은 천천히 약화되어 조직 전체에 깊숙이 파고들어 마비는 조직을 사망으로 이끈다. 

죽어버린 조직은 회생이 불가능하거나 재건하는 데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 책임과 지난함은 '다음'사람의 몫으로 남겨진다. 문제를 확산시킨 책인자들은 대부분 다른 부서로 전출했거나 일부는 이미 퇴직했으므로, 정작 조직이 쑥대밭이 됐을 때는 책임 소재마저 아득해져 따져 물을 수조차 없다. 

사무실로 돌아와 논문을 들여다 보고 교정을 보았다. 

논문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래전 죽은 환자의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 Recent posts